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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식성은 아이의 미래다
 hunt  09-16 | VIEW : 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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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성에 있어서만큼은
장모님들의 이상형이다

못먹는게 없고
뭐든 맛있게 먹으며
젊은 음식보다
어머니가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할법한
소박하고 흔한 음식들을
좋아한다.


물론 그와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들이 있긴 한데
도대체 내가 이걸 왜 좋아하게 되었을까
분석해보면
그 끝에 꼭 집안 어르신들이 걸려있다.

외할머니의 씨크릿 레시피였다가
지금은 외숙모가 전수받은 짠 조기.
어머니가 끓여준적 있던 알 잔뜩 들은 꽃게탕
겨울이면 온가족이 매일 먹던 곰국속 도가니
엄마없을때 아버지가 혼자 해드시던 생선찜
(구이도 조림도 아닌 밥을 할때 찐 그 생선)
된장찌게에 적셔 먹던 호박잎 쌈
기름칠하지 않고 구워낸 김과 간장.
난로에 구워먹던 가래떡.
큰어머니의 히트넘버 토란국
중학교 다닐때 학교 근처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짝수날 사주시던 광화문 미림의 메밀국수
홀수날 사주시던 고려삼계탕


지금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음식은
다 어르신들로 부터
훈련받은 것이다.


내가 양념통닭을 손도 안대고
소든 돼지든 닭이든
꼭 소금을 찍어먹는 것도
우리집의 유일한 고기 레시피가
소금구이였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편식을 하는 인균이는
한가지 음식에 꽃히면 매일 그 것만 먹는다.
문제는 인균이가 우리가족 외식 메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모두가 덩달아
한달을 돼지갈비만 먹다가
또 한달을 우동만 먹다가
최근엔 어딜가든 불고기 - 꼭 금쟁반에 나오는 - 만 먹으러 다녔다


얼마전부터 나는 외식할때 마다 인균이에게
새로운 음식을 먹게 하고 있다.

좀처럼 입에 대려 하지 않는 음식을
억지로 권한다

인균이는
한입 먹어 봐서 맘에 들면 인균이가 먹고
맘에 안들면 내가 책임지고 다 먹어치우는 조건으로
입에 댄다


그런 과정을 거쳐
죽어도 입에 안댈것 같던 음식들 리스트가
늘어가고 있다


참치회, 콩국수, 새우완자탕, 어만두,
해물누룽지탕, 순두부..
그리고 내가 식탁에 앉아
맥주랑 먹던 노가리 까지


오늘 인균이는

마즙이 듬뿍 들어간 붓카케 우동을
한입 먹어보더니
의외로 합격통보를 했다

"음 이거 괜찮아 계속 줘 "


먼 훗날.
놀이동산과 만들기의 추억보다
이렇게
길들여진 입맛이
아빠를 더 떠오르게 할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아이와 함께 먹기는
그래서 소중하다


아빠의 식성은
아이의 미래다.



@ 은비?
아마 개고기를 줘도 먹을거다.



요시농
오- ㅎㅎ 은비는 쭉쭉빵빵한 미녀가 될듯^^ 글구 광화문 미림 저도 자주 가는데...;; 맛있겠다 09-16  


hunt
쭉쭉빵빵은 유력, 미녀는 글쎄. 미림은좀짱. 실연은 잘 극복하셨지요 09-16  


dazzle
저도 이버지 덕에 못먹는 음식이 아주 드물게 되었지요
피맛골에 빈대떡집과 더불어 미림은 아버지랑 종종 갔는데
딴 사람이랑 갈때보다 아버지랑 갈때가 더 맛있음 ^^
09-18  


hunt
오. 의외로 미림팬이 많군요
계산해보니 제가 미림을 다닌 해가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생기고 오비베어스가 우승하던 그해부터
83년 까지네요.
이사 간 미림 (옛날엔 교보 바로앞큰길에 있었어요) 가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좀 ..
09-18  


이경섭
어떻게...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제가 쓴 일기 같은지...
(은비와 제 딸 예준이 식성만 빼고. 제 딸은 완전 편식녀...)
09-19  


hunt
여자앤 좀 편식도 해야 매력있는건데. 09-20  


돌고래삼룡이
맨 마지막 문장 읽고 혼자 "으하하"하고 웃었어요 ㅋㅋㅋ
담에 혹시 은비만나게되믄 맛난 개고기사줘야지
09-20  


돌고래삼룡이
선생님, 혹시 고양이별티셔츠 남는거 없나요? 권색 입고시픈데 ㅋㅋ 09-21  


우주를날다
읽는데 배가 고프군요 ^^ 은비 짱 !!! 인균이는 미식가가 되겠어요 ^^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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