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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다이어리제안 (1) : 1/X 다이어리
 hunt  12-01 | VIEW : 6,918
동요 하나.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맹이 돌맹이 깨뜨려 모래알
개울물 모여서 시냇물 시냇물 모여서 큰 강물 큰강물 모여서 바닷물


인생이 바다처럼 가없어 보이지만
사람의 평균 수명이 80살로 유한한 마당이니
우리는 가끔 철학이 아니라 산수로 인생을 관조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이제 막 제대한 그는 막연히 “아주 긴 군생활”을 한 게 아니라 정확히 인생의 3%를 군대에서 보낸 것이고.
애를 둘 난 그녀는 인생의 2% 가까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보냈다는 결론이 나온다

박사가 된 사람들은 초등학교 입학해서부터 따지면 거의 삶의 30%를 공부만 한 것이고
영화를 1000편을 봤다는 영화광은 무려 자기 생의 0.4%를 캄캄한 극장에서 보낸 셈이다

그렇게 따져보면 바야흐로 저물어 가는 2008년도
당신이 “눈깜짝할새 후딱 지나가 버렸다”고 후회 하든  “다사다난했다”고 소회를 말 하든
산수로  정확히 계산된다.  

당신 생의 약 1.25% 분량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1년이 참 소중해지는 대목이다

가끔 분초를 기본단위로 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1년 단위로 나누어 살게 되어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회나 망년회는 있지만
한 달을 마감하는 망월회(忘月會), 매일 아침을 맞이하는  신조회(新朝會) ]따위가 없다는 것
그리고
해가 바뀔 때 마다 다이어리들을 새로 구입해
써나가기 시작한다는 것들이 그 증거다

그 1년을 바윗돌 처럼 깨뜨려 보면 52주가 나오고
한 주를 미분하면 비로소 하루가 나온다.
우리는 그 하루를 자고 먹고 마시고 입고 만나고 웃고 울고 노래하고 춤추고 벌고 쓰며 보낸 뒤
그 합산을 요약해 “올 한해는 좋았다. 나빴다”며 짧고 감흥 없게 촌평을 하곤 한다  

그리고는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 다이어리를 펼쳐 들고
새롭게 시작되는 인생의 1.25%를 기록해 나가기 시작한다.

다시 셈을 해보자
내가 오늘 담배를 반 갑 피웠다면
과연 지난 1년 동안 피워댄 담배가 몇 갑 인지 어렵지 않게 계산된다.
반대로 내 연봉을 알면 내 시간당 급여가 얼만지도 정확히 계산된다.
굴곡 없는 평범한 삶이라면
일 년 동안 웃는 양도 화낸 시간도  읽은 책도
평소 하루에 웃고 화내고 읽은 시간X365 하면 대충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에 80만 곱하면 평생 행복했던 양까지도 계산된다

평생의 행복이 1년에 달려있고
그 1년은 사실 하루에 달려있다는 지극히 식상한 주장이
산수로 증명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내가 2008년 초 1/X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하게 된 이유다
1/X 다이어리 쓰기의 첫 번째 주제는 “밥” 이었고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우리가 영화를 좋아한다면
우리는 죽기 전에 영화를 백 편 볼 수도 있고 천 편을 볼 수도 있다.
또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천 권을 읽어도 되고  맘먹기에 따라 평생 만권 넘게 읽어도 된다.
물론 우리 생이 유한하니 영화를 1억 편은 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조건부 무한함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먹는 건 그렇지 않다.
아무리 밥을 좋아해도 정상적인 신체 발란스를 유지하려면 누구나 하루 세끼를 먹게 되어있다.
(조건부 유한함이라고 해두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올 한해, 더 나아가 평생 먹을 식사의  횟수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야식까지 꼬박 챙겨먹어도 평생 식탁에 앉을수 있는 시간이 10만 번을 넘지 못하고
내가 이미 그 중에 5만 번 정도를 써 버렸다는 건 말이다. .

점심을 대충 컵라면으로 때웠어도 나는 내게 허락된 1/100000의 식사기회를 써 버린 것이고
한끼를 굶고 건너 뛰어도 역시 1/100000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심지어 언젠가는 입원해서 병원밥으로 30/100000을 한방에 날려 버린 적도 있다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2008년 부터는 가급적 꼭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살아야만 했다.
남은 50000번의 식사를 즐겁게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그래서 좀 쌩뚱 맞지만 "그저 그런 음식"으로 한끼를 때우지도, "맛없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도 않겠다”
는 다짐을 새해의 목표로 세웠다.

그런데 막상 “좋아 오늘 저녁은 어디서 뭘 먹지?”  하는 상황이 되자
도무지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분명히 수백 군데 식당을 다녀봤고
수 천 가지 메뉴를 먹어봤는데
당장 내일 점심약속을 정하려면
지난주에 갔던 식당이 어디였는지 조차 생각이 안나는 것이었다
그럴 때 주로 대충 가까운 데서 먹고 대충 편한 걸로 때우게 되어있다.

그래서 내가 어디서 뭘 먹었는지를 메모하고 업데이트 하는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방식의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1/50000 다이어리

매일 지나치는 한 끼는 내가 먹을 수 있는 50000 번 중에 한번인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어디서 누구와 무슨 식사를 했는데 맛은 어땠는지 별 점으로 표시하는 일을 해나갔다
아울러 앞으로 먹어봐야 할 리스트도 기록해 나가며 시간 날 때 마다 찾아 먹었다

그 결과 일년 내내  "대충 때우는 일"이 줄어들었다
인스턴트 음식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고 .
적어도 하루 세 번은 무조건 즐거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모르긴 해도 1/50000다이어리는 내 건강에도 큰 기여를 했을 거라 생각한다.
2008년 첫날 아침 “건강제일”이라는 거창한 신년 계획을 휘호로 써서 벽에 걸어둔 사람들 보다
한끼의 계획을 세운 내가 더 건강제일의 해를 보냈을 거라고 확신한다.  

1/50000다이어리의 성공 이후로
나는 우리 생에 유한한 것들을 찾아 1/X 다이어리를 써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1년을 구성하는 최소단위인 하루를 행복하게 하는 작은 일들 중
기록해야 할 일 을 찾아 생각해 두었다가 계속 업데이트를 했다  물론 모두 밥 한끼 처럼 사소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1/200 음반 다이어리도 쓰고 있다
나는 차 안에서 옛날 팝송을 들으며 운전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그래서 음반 매장에 가서 A부터 Z까지 가수들 리스트를 보니 그 팝송 음반 역시 유한했다.
각 가수의 베스트 앨범을 사 모으면 약 200장 정도만 사면 내가 듣고 싶은 옛 팝송은 다 들 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1/200 음반 다이어리를 적어가며 음반을 한 장씩 사 모았고 2008년 동안 50명 가까운 추억의 가수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한 해를 마감하는 즈음 여느 해와 달리 올해는 해놓은 일도 많고 할 얘기도 많아졌다
그냥 “음악을 많이 들었다” 고 말하지 않고 “내 소유의 음반아카이브를 갖게 되었다”고 뿌듯해 할수 있게 되었고
2008년은 끝났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 올해는 G로 시작하는 이름의 가수까지 모았고 이제 H로 시작하는 가수로 넘어가는 시점” 이라고 연속성과 확장성이 있는 계획을 말 할수 있게 되었다
1/x 다이어리의 힘이다.


2008년이 간다
매일 밥 먹을 때 행복하고 차에서 운전할 때 즐겁고
음반을 고르며 설레고 하는 그 시간이 채워진 2008년은
매출 1조 달성을 위해 뛴 기업가 보다 의미 있고 행복했다고 자부한다

지금도 나는 1/50000다이어리를 쓰고
1/200다이어리를 쓰고
또 다른 주제로 1/1000다이어리를 쓰고 있고
앞으로도 1/x 다이어리를 계속 늘려 나갈 생각이다.

일기를 쓰며 매일 이렇게 읍조릴 것이다..
“ 오늘 저녁식사는 내게 5만 번 밖에 남지 않은 식사 기회 중 한번이므로.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가 쓰는 신년계획은 1/1 계획인 경우가 많다
그 해에 뭘 달성하겠다는 거창한 계획들인데
다 인정하다시피 그 목표. 잘 달성 안된다.
우리가 그 동안 써왔던 다이어리는
굳이 표현하자면 1/365 다이어리다
그 동안  “오늘 날씨는 맑았고 누구를 만났고 “ 하는 1/365 다이어리를 써왔다면
2009년에는 다양한 1/X 다이어리를 시도해 보기를 권장한다.
참고로 그 X는 개울물과 모래알 처럼 아주 사소할수록 좋다.


@ 리바트 사외보에 급 기고한 글입니다.
쓰면서 디자이너 한명 꼬셔서  1/x 다이어리를 쓰기에 적합한  노트 하나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인종
시작이 반이라고, 안하는것보단 하는게 좋다고, 그중10%만 달성해도 성공한거라고
매년 아주작게 상세히 신년초계획을 100가지이상 세우면서 난 이렇게 계획을 세웠다고 자랑했는데^^
올해는 아니 지금 당장 1/X다이어리를 만들어봐야겠어요 어지 이런생각을...항상 감사할뿐입니다
(혹시 그노트 만드시면 공지에 올려주세요ㅋㅋ)
12-01  


hunt
우리삶에 유한한 X가 또 무엇이 있는지 말씀해주시면 다 반영해서 한번 만들어 볼께요
프랭클린, 몰스킨 다죽었어.
12-01  


따뜻한꽃
어떤 분을 모셔서 집에서 간소하게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어요.
잘 익은 갓김치와 된장찌게와 너비아니 구이..(물론 제 솜씨는 아니고 친정어머니..)
다 드시고 '기억에 남는 한 끼가 될 거 같아요.'하시더군요.
그 분은 뇌종양 환자로 재발하여 수술한 지 얼마 안되는 분이셨죠.
그때 이후 한 끼 식사의 의미가 달라졌어요..제게도...
---많이 바쁘셨나봅니다.. 인균은비도 잘 있죠?
12-01  


eng_82
기발한 생각이군요. 사는게 좀 덜 심심해질 것 같습니다. 첫 댓글입니다. 12-01  


hunt
꽃> 한끼의 소중함을 알고 난 뒤 부작용도 좀 있습니다. 엥겔지수가 .... 여전히 바쁘고요 은비 인균이도 잘 못봅니다.
eng > 그러나. 잘못하면 식탐으로 보일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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