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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 억울하면 출세해라
 여준영  02-21 | VIEW : 10,000
counsel080220.jpg (58.1 KB), Down : 87


필립스소니케어 포스트잇
나는 이 메모지를 8년째 가지고 있다.


2000년 말 필립스를 만났다
당시 직원수 다섯명의 초미니 회사 프레인의
초라한 고객 리스트에는
남이 이름 아는 회사 하나 없고
외국계 회사도 하나 없었는데
필립스는 그 두가지 레퍼런스를 한꺼번해 해결해줄 구세주 였다.
“드디어 남이 아는 유명한 기업을 수주했다”
는 촌스런 이유로 회사가  한껏 흥분되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에 처음 들여오는
Sonicare 라는 음파 칫솔을
치과 의사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미국에선 이미 오래 전 출시된바 있고
월마트 등에 할인된 가격으로 풀린 상태였는데
한국에서는 그 몇배의 가격을 받고 팔아야 했다.
컨수머 대상 마케팅은 회사가 금지했고
프로페셔널 PR에 마케팅 자원대부분을 쏟게 되어있었다
전동칫솔 대신
처음 들어보는 음파치솔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알려야 한다는 것도
쉬운 숙제는 아니었다

당시 나는 모든 고객의 일에 관여하는
PT 전담자이자, 영업맨이자  AE였는데
  
완소고객 필립스에는
더더욱 헌신할 수밖에 없어
담당 부장을 직접 만나서 일했다


한번은
그의 집에 불려가서
그가 좋아한다는 삭힌 홍어를 함께 먹은 적도 있다.
(그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홍어를 먹은 날로 기록된다
나로선 먹기싫은 홍어를
맛있다고 연신 집어 먹는게  일종의 고객만족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홍어를 먹을 때면 사당동 그 부장 집이 생각난다 )


그는 자기가 팔아야 할 제품에 대해
거의 종교적인 믿음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일하던 어느날
한 술자리에서
나는 정말 수치스러운 일을 겪고야 말았다

= 여사장 소니케어 써봤지요
+ 네
= 어때요
+ 처음이라서 좀 쎄요.  진동이
+ 진동이 아니라 음파라고 말해야죠. 이건 음파 치솔이지 진동치솔이 아니야.
= 아 네.
+ 제품 정말 좋지요 ? 최고지요 ?
= 글쎄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제 일주일 써봐서요.
+ 아니 우리제품 홍보하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확신이 없어요?
= 확신이 없다기 보다는 써보자 마자 최고라고 말하는건 거짓말하는거고…
+ 뭐가 어째요 ?
= 사실  비싼 가격이 좀 걱정 되기도 합니다.
치과의사랑 얘기해보니 예상대로 가격 때문에 권유하기 힘들다고..

나는 그저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 해보자는 얘기를 할 참이었는데
그는 이미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져서는
내 말을 끊었다

= 여사장 배가 그렇게 고프쇼 ?
+ 예?
= 돈이 아무리 좋다고 자기가 확신 없는 제품도 PR합니까 ?
+ 예 ?
= 돈 때문에 아쉬워서 이 프로젝트 하나 본데.
자존심도 없소 ?
제품 맘에 안들면 그냥 “못하겠습니다” 하세요
왜.내말이 기분나쁩니까 ?
돈 때문에 억지로 하는거면  
내가 다른 고객사 하나 소개시켜주면 되잖아.


이번엔 내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 드라마라면 이렇게 전개된다.

주인공이 밥상을 들어 엎는다  
“그만두라면 무서울줄 알고 ?
십억을 줘도 이 일 못해, 아니 안해 !! ”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뚜벅 뚜벅 나온다
근데 알고 보니 그건 주인공의 상상.
곧  정신을 차린 주인공은
비굴하게 사죄한다 ).



나는
화를 꾹 눌러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기분이 나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장님처럼 이 제품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저는 지금 이 치솔을 사랑할 이유가 없는 무관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제 생각이 부장님과 달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칫솔 전문가는 아니지만 PR 전문가 이고.
어쩌구 저쩌구


표면적으로는 할말 다한다는
비장한 투였지만
“그래서 이일을 때려 치겠다”는 말만은
꾹 참았던 것 같다.....

수치스러운건 내 개인일 뿐

프레인으로선 어쨌든
그 기회가 소중했으니까.


결과는 ?
그 부장 집으로 홍어 먹으러 갔지.

아무튼
그날 밤 술취해
사당동 그 언덕길을 혼자 걸어 내려오면서
“억울하면 출세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던 다짐이
강한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바뀐 게 바로 그날이다.

약하면서 좋은 사람은 있지만
약하면서 좋은 회사는 있을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 홍어처럼 삭혀
그 뒤로 나를 억울하게 만드는 상황과
사람과 사건을 스승 삼아 살아 왔다.



힘이 없어, 능력이 없어 수모를 겪거나
괴로운 상황에 처한 동료나 후배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힘내라” 가 아니라

“억울하면 출세해라” 다.


당신을 혼내는 상사가 미우면
욕하지 말고 출세해라
당신을 괴롭히는 고객이 있으면
투덜대지 말고 출세해라
당신을 무시하는 동료가  있으면
싸우지 말고 출세해라
하는일 없이 나보다 돈 잘버는 놈 있거든
질투하지 말고 출세해라
아무도 당신을 인정해 주지 않거든
좌절하지 말고 출세해라


“억울하면 출세하라”

적어도 나에게 이말은
조소나 비아냥이 아니라
최고의 충고였던것 같다 .


당신을 억울하게 만드는
고객이 상사가 환경이
최고의 스승일지도 모른다.



에너지 넘치고 일 잘하고 직설적이던
필립스 김부장”님”과의 만남은
내겐 정말 행운이었다.

그를 만나서
소주 한잔 하고 싶다.





조은아
누구나 세상살면서 저 비슷한 상황 겪었겠지만, 거꾸로 들여다보면 그 순간 비장한 각오를 할수 있는사람..
그리고 그 비장한 각오를 행동으로 실천해나가는 용기와 의지가 있는자만이 출세하더군요.
누구나 겪지만 누구나 느끼고 행동하지 않는것
그것이 성공과 실패, 출세와 굴욕의 차이겠지요.
그러한 면에서 일단~은 헌트님은 참 센스티브하십니다.
02-21  


hunt
근데 결정적으로 제가 아직 출세 못했다는거... 02-22  


조은아
진짜 결정적으로다가....제가 알고 있음 이미 출세하신겝니다. 02-22  


이대열
예전 직장생활때 느꼈던 수치심들이 당시엔 정말 '죽고싶을'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현재 나 자신을 더 강하고 독하게 만들어 준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저도 이제 슬슬 출세할때도 된것 같은데 말입니다...
02-25  


hunt
은아> 권력의 실세나 할법한 말씀을...
대열> 출세가 무슨 정기 예금인가요 ^^
02-25  


777
겸손하시긴... ^^ 02-27  


유철우
마음이 더욱 비장해지는것이 역시 전 아직 출세못한게 맞군요.. 아자 03-28  


김세환
아....... 부끄러워지네요.

초심이 자주 흐려지는 걸보니말이에요

저도 저녁에 맛있는 것 먹고 푹자고일어나면 전날의 다짐을 잊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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