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
 
 
 
 
 

  
거의 모든 여자가 나를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여준영  06-10 | VIEW : 12,375
현대 그룹에서 청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단행본을 만든다며

" 방황하던 20대 나를  매혹시켰던 뮤즈나 멘토나 인연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단순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살아라’는 두루뭉술하고 원론적인 조언보다는, 힘들었던 고백을 좀 해달라.
당신은 별로 힘든시기 겪지 않고 매끈해 보이지만 그래도 어려웠던거 없나 잘 생각해봐달라" 고
원고 청탁을 해왔다.

그리고 메일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 원래는 남/녀 중 자유롭게 선정하실 수 있도록 부탁드리려고 했으나, 다른 필자들이 대상자로 거의 대부분 남자를 꼽아서
여 대표님께는 여자로 국한해서 청탁드리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별 고생 없이 매끈하게 자라 보이는 내가
힘든 시기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냈다.
나를 아는 지인들에겐 밝히기 싫고 창피한 얘기지만
나와 무관하고 나를 볼 일 없는 대학생들, 특히 나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불쌍한(?) 이가  읽는다면 도움이 될것 같아서 그동안 꺼리던
민감하고 슬픈 가정사도 포함시켰다.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멘토들의 착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걱정이 된다.

지난해 말에 원고를 마감했는데 이제야 책이 나온다고 한다.

즉 6개월 전의 글이고
아마 지금 청탁을 받았다면
글을 써서 보내지 않았거나 썼더라도 이런 식으로 쓰진 않았을것 같다.
6개월 전에 내 정서가 좀 이상했는가 보다


많이 읽게할 목적의 무가지 라고 하니 이곳에 공개해도 될것 같아 옮겼다

나머지 필진들이 아주 훌륭한 분들인것 같으니 조만간 책 나오면 구해 보시길..




------------------------------------------------------------------
거의 모든 여자가 나를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She makes me want to be a better man)
------------------------------------------------------------------


부자로 태어나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유년 시절을 부족함 없이 보냈다.

가난하게 자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워낙 큰 사고여서 수습 하느라 가진 재산의 대부분이 없어졌고 몇 년 간 온 가족이 중환자 병동에서 살다시피 했다.
병상에서 기적처럼 회복한 아버지는 다시 예전처럼 풍운아가 되어 “가정적”이 아닌 “개인적”인 삶을 추구하셨다.
결국 부모님은 헤어졌고 나는 고3 그 중요한 시절을 허름한 하숙집에서 혼자 보내야 했다.
학력고사 (지금의 수능) 보던 날 늦잠 자서 시험 보러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별 걱정”을 다 해야 했다. 점심 도시락도 없이 빈손으로 가서 서러운 대입 시험을 봤는데 그래도 운 좋게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학을 갔다.
대학 생활 내내 내 힘으로 용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술 마시고 노는데 다 썼다.
(내가 물려받은 어머니의 강한 책임감과 아버지의 대책 없는 한량기질이 동시에 발휘된 것이다)
누울 곳도 변변치 않은 삶이었는데 예쁘게 꾸며 입고 비싼 음식 먹으며 젊음을 낭비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내가 어렵게 사는 지 몰랐다. 내게 밥 사준 친구는 없어도 내게 술 얻어 먹은 친구는 한 사단쯤 되었다.

가난하지 않은 척 하다
원래 부자였다가 가난해진 사람은 애초부터 가난했던 이보다 가난이 더 불편하고 창피하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숨기려고 여러모로 노력 하게 된다.
대학교 입학식 날부터 나를 쫓아다니던 부잣집 여자애와 연애를 했는데 오랜 기간 연애 하면서도 그 애는 내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사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남자로서 꿀리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번 돈으로 늘 번듯한 데이트를 했기 때문이다.
아니 번듯하게 데이트하기 위해 쉴 새 없이 과외를 했다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녀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또 그 친구의 애인도 다 있는 집 자식들이었기 때문에 내 사는 형편을 털어놓았더라도 그게 무슨 얘긴지 이해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분차이(?)가 나는 아이랑 사귀다 보니 열등감에 사로잡힌 적도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DJ DOC의 노래가 있었는데 어찌나 내 심정과 똑 같던지 수십 년 지난 지금도 그 가사를 이렇게 외우고 있다


“그렇게 사랑이 깊어 갈수록 난 괴로워져 갔다
군대 안정된 직장..
무턱대고 널 기다리게 한다는 건 사랑이란 이름에 횡포였어
만약 너의 행복을 보장해줄 사랑이 있다면 널 보내야 한다고
내 자신을 설득 시켰어 그게 내 사랑의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어
어느덧 너는 지쳐 갔었지 아무런 약속 못하던 내게.
-        그녀의 속눈썹은 길었다 中 –


6년간 연애를 하다가 나는 현역으로 입대 했고 그녀는 내가 군에 있는 동안 의사와 결혼 했다.
실연한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 번듯한 척, 가난하지 않은 척 연기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한편으론 자유로워졌고, 한편으론 그래서 점점 망가져 갔다.
일주일의 반은 Rock cafe로 출근해 DJ를 하며 술에 빠져 살았고, 나머지 반은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와 포커로 밤을 샜다. 폐인처럼 사는 나를 보다 못한 후배가 새로 연애를 해보는 게 좋겠다며 미팅을 주선했다
안 그래도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던 터라 “좋아 오늘 만나는 사람이 누구던 그 사람과 무조건 결혼해버릴래” 라며 미팅에 나갔다. 그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내 아내다
내 아내는 나를 적극적으로 쫒아 다녔는데
내 아내의 친구들은 나를 탐탁치 않아 했다.
학교도 안가고 매일 술집에서 음악을 틀고 여자들 속에 파묻혀 사는 놈과 결혼하면 평생 고생한다고 말렸다.

약속을 하다
그런 시선 앞에 당당하기 위해 괜찮은 직장이 필요했다. 목표나 비전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대학 간판이 나를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게 했던 것처럼 번듯한 직장이 나를 구원 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갈 수 있는 곳에 입사를 했고 잘리지 않기 위해 남보다 열심히 일했다. 높은 이자의 빚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는 놓치면 안되는 끈이었다.
그 시절 여자친구에게 내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은 “기다려 봐” 였다. 혼자 힘으로 벌어 결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저축을 해서 차를 사고 집을 사는 건 그때도 지금처럼 불가능했다. 게다가 나는 부모의 도움을 받을 입장이 아니라 부모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처지였다.
막막한 미래에 대해 여자친구가 내게 이런 저런 불안을 늘어놓을 때 마다 내가 그 대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말이 “조금만 기다려 봐” 였다. “기다려 봐”가 안 통할 때 덧붙이던 말도 있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약속을 지키다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고, 내가 “알아서” 하기로 하자 삶이 단순하고 치열해졌다.
대학 때 놀 거 다 논 탓에 사회 나와선 노는 것이 시들해 졌으니 한 때 막 산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회사가 주는 월급이 고마웠고 받은 만큼 충실 하자는 생각으로 성실히 회사를 다녔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다 보니 할 줄 아는 일이 생겼고 할 줄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잘 하는 일이 생겼다. 그 잘 하는 일로 회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살아 왔다.
사연도 곡절도 많고 운도 많이 따랐지만 내가 재주에 비해 큰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비결은 두 가지 내 습관(?)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아내를 만났던 그 미팅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삐삐(beeper)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삐삐가 없는 게 창피해서 “나도 있는데 집에 놓고 왔다” 고 거짓말을 하고 일주일 동안 돈을 모아 그들의 삐삐보다 더 좋은 삐삐를 장만해, 마치 원래 있던 것 처럼 들고 다음 만남에 나갔다.
가난을 숨기고 살던 그땐 늘 그런 식이었다. 없는데 없는게 창피해서 있는 것 처럼 말하고 실제로 그걸 갖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반복 하는..
그리고 지키기 벅찬 약속도 남발했다. 세상에는 좀처럼 후퇴할 수 없는 게 세가지 있는데,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크기 그리고 애인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다. 여자친구를 만난 지 백일 째 되던 날 십 만원 짜리 청바지 (당시로선 학생이 사기에 부담되는 가격이었다)를 선물했다 그 바람에 이후 더 큰 선물을 마련하느라 참 많이도 고생했다. 선물은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 되어서 여자 친구가 자동차 얘기를 하면 “5년 만 기다려 봐” 했고, 집 걱정을 하면 “10년 안에 알아서 할게” 하고는 그 약속을 마음에 새기고 지켜 나갔다.
그렇게 없던 삐삐를 만들어 낸 것 같은 짓을 스무 번 정도 하고
여자친구에게 했던 벅찬 약속을 스무 번쯤 지키고 나니
나도 모르는 새 지금의 내가 돼있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리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게 전부다

다시 부자가 되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93년 이석원이란 사람이 한 PC통신 음악동호회에 자신을 [언니네이발관]이란 밴드의 리더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사실 그런 밴드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가 다른 동호회원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단다. 어느 날 이석원은 [언니네이발관] 보컬 자격으로 라디오에 팝송을 소개하러 나갔다. 본의 아니게 온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 한 셈이다. 이석원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일주일간의 밤샘 끝에 진짜 노래 세곡을 완성했는데 이게 바로 [언니네이발관]의 최초 데모곡이 되었다고 한다. 있지도 않은 밴드의 리더라고 떠벌인지 꼭 1년 만에, 이석원씨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밴드를 갖게 된 것이다.
내가 없던 삐삐를 갖게 된 것 처럼 말이다.

많은 어른들이 젊은 이들에게 원대한 비전을 가지라고 한다. 꿈을 키우라고도 하고 도전을 두려워 말라고도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런 얘기를 할 만한 삶을 살지 못했다. 대신 여자애한테 잘 보이려고 애쓴 덕분에 짧은 시간에 없던 삐삐를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삐삐보다 수만배 더 큰 무엇도 사실은 전부 그런 방식으로 갖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세상을 바꿀 목표를 세울 필요도 없다. 때론 남을 위해 사는 것보다 자기가 떳떳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이 더 남을 위하는 경우도 있다. 큰 꿈이나 엄청난 재능이 없더라도 그냥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좀더 번듯하게 데이트 하기 위해, 갖고 싶은 기타를 사기 위해, 타고 싶은 오토바이를 장만하기 위해, 꿀리지 않으려고 뱉은 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작은 노력들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모든 게 다 잘 되고 있는 걸 발견 할 수 있다. 우리 중 몇은 나처럼 그렇게 미시적이고 형이하학적인 방식으로 성공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처음 연애 할 때 내 가난함을 숨겼다고 했었는데 사실은 내 처지에 대한 스포일러 역할을 한
노래 한 곡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의 그 이수만대표)의 “사랑하고 만거야”
라는 노래였는데 후렴이 이랬다.

“ 기다려, 기다려 지금 너를 만날 수 없어. 기다려, 기다려 나도 무엇이든 최고가 될 거야. “

지금 고달프거든 저 노래 한번 불러보자. 그리고 가사 대로 한 번 살아 보는 거다.


P.S
나는 평생 연애를 두 번 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스쳐 지나는 거의 모든 여자를 마음속으로 흠모 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 그리고 누군가를 마음에 둘 때 마다 그에게 근사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 근사하게 보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실제로 근사해 지는 것” 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 했더니 이제 진짜 어느 정도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내 첫 여자친구와 아내와 그리고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수많은 모든 여자들이 힘을 모아 나를 근사하게 만든 것이다.


이민우
이 글을 읽고 제가 든 생각은~

"나한테 솔직하게 살자~"
잘 안되던데 해봐야겠네요.
06-10  


강신우
몰랐던 일들이 꽤 있었구나...

어째꺼나...모든 일에 꽤나 열성적이었던 친구....
여전히...그 열정으로 나아가가고 있다는 느낌...^^
06-10  


여준영
이민우> 내가 나한테 거짓말 하는게 되다니 그게 더 신기한데요 ^^
강신우> 어. 옛날에 나 표안내고 힘들었다....
06-10  


themj120
어두운 저녁에 독한 술 한잔을 거치고 한호흡에 쓰신건가요~~ 여느 자기계발글보다 인간적이고 강렬합니다~
선뻥 후수습 라이프, 아자!
07-07  


이경섭
신문로 사무실에서... 연필을 입에 물고 노트북 자판을 치던 모습이 처음이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혹시 그것도... 연출이 아녔을까... 디게 멋져 보였는데 말이죠.
하긴 뭐... 난 남자니까, 잘 보일 이유 같은 건 없었겠지만요. ㅎㅎㅎ
07-16  


김자연
헝........... fake it until you make it 이라는 말도 생각나요. 물론 fake의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고맙습니다, 이런 글. 10-02  


신동희
인간적이고 진정성 있는 글 정말 감사합니다. 06-19  

 LIST   
  [워닝] 익명, 가명 회원은 어느날 갑자기 정리될지도 몰라요. (내용없음)  °[52]
  [공지] 새로운 구인 공고  °[9]
  [공지] 사람을 찾습니다 세번째 공지  °[17]
  [공지] 어쩔수 없이 회원제  °[69]
332   내가 하는 이 일이 전통이 될 것이다  °[2]  여준영 15/01/26 9147
331   채용과 T.O  °[5]  여준영 14/05/28 13799
330   인간관계 함수 (5)  °[4]  여준영 13/07/07 12739
329   [Scene] 마진콜 (1)  °[4]  여준영 13/07/02 10635
328   [인터뷰] TPCQA  °[3]  여준영 13/06/10 8606
  거의 모든 여자가 나를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들었다  °[7]  여준영 13/06/10 12375
326   인간관계 함수 (4) : 잘났다 못났다 안다 모른다  °[4]  여준영 13/04/11 11204
325   다행이 꼰대가 될 틈이 없다  °[9]  여준영 13/02/14 9239
324  비밀글입니다 movie    여준영 12/09/12 1
323   201203 인터뷰 중.  °[11]  여준영 12/04/20 13394
322   식당편지 (1)  °[5]  여준영 12/03/02 11767
1 [2][3][4][5][6][7][8][9][10]..[23]  ≫ SEARCH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